• 2023. 9. 2.

    by. 위드_길

    목차

       

      소리문자인 훈민정음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또한 이 세상에는 있는 문자는 얼마나 될지, 어떻게 전파가 됐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기원전 3천여 년 전에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처음 문자를 사용한 이래 수많은 문자들이 생겨나고 없어졌습니다.

       

      현재 사용되는 문자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영향을 받은 페니키아문자인데, 기원전 1,500년경에 만들어진 페니키아문자는 그리스와 로마로 전해지고, 아라비아와 중앙아시아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홍해를 끼고 인도양을 건너 인도와 티베트까지 전파되었습니다. 동아시아는 갑골문에서 출발해 수천 년 동안 중화세계에 뿌리를 내린 한자계열의 문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은 어떤 문자계열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600년 전 세종에 의해 독창적으로 만들어진 문자 훈민정음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훈민정음의 독창성

      훈민정음은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독창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약 7,000여 개입니다. 하지만 문자는 고작 30여 개에 불과합니다.

       

      지구촌 오지의 작은 부족이라 할지라도 자신들만의 언어를 갖고 있지만, 고유한 문자를 사용하는 경우는 그리 않습니다. 문자가 없는 민족이나 나라는 이웃나라 문자를 빌려 쓰기도 하고, 조금씩 변형을 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페니키아문자와 갑골문자의 영향을 받아서 발전시켜 온 것입니다.

       

      그러나 훈민정음은 어떤 문자 계열에서도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 독창적인  문자입니다. 600년 전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은 세계 어느 나라의 문자와 비교해 봐도 부족함이 없는 문자입니다.

       

       

      훈민정음
      소리문자 훈민정음

       

       

       

      세종은 일반 백성들의 마음과 소리를 담아 내려고 노력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대명률]은 조선의 법전으로 한자와 이두로 복잡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의 말을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서 문자로 표기하다 보니 어렵고 복잡해서 일반 백성들은 [대명률]을 알기 어려웠습니다.

       

      이로 인해 문자를 알지 못하는 백성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기 일쑤였고, 그런 백성들의 고충에 대해서 안타까웠던 세종의 마음이 [삼강행실도]에 나타나 있습니다.

       

      세종은 그림으로 된 [삼강행실도]조차 백성들이 모를까 봐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종은 백성들의 말, 소리를 알아보기 쉽게 하는 소리문자를 만들게 됩니다.

       

      심지어 세종은 아이들의 말이나 사투리, 그리고 자연의 소리까지 담아내려 했다는 기록이 '훈민정음해례본 정인지 서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글의 뜻을 일반 백성은 깨우치기 어려움을 걱정으로 여기고 옥사를 다스리는 이는 그 곡절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롭게 여기고 있다"

       

       

      소리문자 훈민정음해례본

      소리문자 훈민정음해례본은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 펴낸 책으로 해례본에는 훈민정음을 만든 취지와 제작원리, 훈민정음의 특징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해례본의 내용 중에 배우기가 배우 쉬워야 한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한글을 비롯한 유럽의 로마자는 음소문자로서, 한 음절이 자음과 모음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소리의 표기가 가능합니다. 한글은 자형이 단순하고 제자원리가 체계적이고 명확해서 배우기가 쉽습니다.

      한글은 자모가 다양해 외국어의 다양한 소리를 음가에 맞게 적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한글은 로마자보다 표기능력이 훨씬 뛰어납니다. 훈민정음이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해례본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바람소리와 학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적을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훈민정음해례본이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이유는,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드니 만물의 뜻이 통한다'라는 해답을 밝혔습니다. 실제로 훈민정음은 소리가 나는 원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기본자 다섯 글자 ㄱ(기역), ㄴ(니은), ㅁ(미음), ㅅ(시옷), ㅇ(이응)은 발음기관을 형상화하여 만들었는데,  ㄱ(기역)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은 모양, ㄴ(니은)은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 ㅁ(미음)은 입의 모양, ㅅ(시옷)은 이의 모양, ㅇ(이응)은 목구멍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습니다. 

       

      한글은 기본자에 점을 더하는 가획의 원칙을 따라 음성자질을 표현했는데, 서양의 언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글이 음소문자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자질문자라고 합니다. 즉 한글은 문자 역사상 가장 발전한 문자로 구분됩니다.

       

      잘 알려진 대로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사용합니다. 언어는 있었으나 문자가 없었던 찌아찌아족은 자신의 고유한 말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찾기 위해 수많은 소리문자들을 사용하려고 했으나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그러다 유일하게 발음기관을 본 따서 만든 한글만이 자신들의 언어를 체계적으로 문자 표기할 수 있음을 알고, 한글을 부족의 언어를 표기하는 언어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람의 언어뿐 아니라 자연과 동물의 소리까지도 문자로 표기할 수 있는 언어인 것입니다.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논란

      훈민정음의 창제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어떤 논란이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문자는 대개 뜻글자와 소리글자로 구분합니다. 소리문자는 음절문자와 음소문자로 나눌 수 있는데, 음소 문자는 한 음절에 자음과 모음이 소리체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훈민정음은 음절문자보다 한 단계 앞선 음소 문자입니다. 문자의 모양에 소리의 모양까지 담고 있는 자질문자로 가장 발전된 문자로 구분합니다.

       

      이렇게 뛰어난 훈민정음이다 보니 오래전부터 훈민정음의 창제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주변의 문자를 본뜬 것이 아닌 이상 어떻게 한 사람이 문자를 만들 수 있었을까에 대한 논란이 바로 그것입니다.

       

      세종실록을 보면 '자방고전'이란 말이 있는데 '옛글자를 본떴다'라는 뜻이 담긴 기록이 있습니다. 훈민정음이 옛글자를 따라서 만들어졌다고 했지만 당시 주변에서 사용되었던 한자와 몽골 파스파문자, 만주문자, 일본어,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등이 있었으나, 비슷한 점이나 연관성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당시의 국제상황을 볼 때 중국의 한자가 국제공통어처럼 쓰였던 시절이기 때문에 세종은 알리지 않고 비밀스럽게 문자를 창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세종 25년, 1443년 12월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만드니... 훈민정음이라 일렀다'라는 기록 외에 별다른 기록이 없습니다. 그로부터 2개월 뒤인 세종 26년, 1444년 2월 16일에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운회의 번역을 명하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곧 훈민정음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는데, 4일 뒤인 2월 20일에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 원로학자들이 집단으로 상소를 올려 반대를 합니다.

       

      반대의 이유는 나라의 큰 일을 신하들의 의견 없이 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세종이 신하들에게 알리지 않고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훈민정음, 과학적인 소리문자

      훈민정음이 과학적인 소리문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기에 신하들은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다고 합니다.

       

      세종은 음의 높낮이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었고, 발음 기관을 통해 말소리가 어떻게 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최고의 음운학자였습니다. 세종은 반대하는 신하들을 향해서 '너희들이 운서를 아느냐'라고 했다고 합니다.

       

      세종은 우리말 구조를 분석하기 위해 우리말을 수없이 듣고, 분석했습니다. 훈민정음의 특징인 초성과 중성과 종성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종의 마음은 어리석은 백성들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는데에 목표를 두고 과정을 이루어나간 것이 훈민정음을 창제과정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백성들을 사랑하고 백성들을 위한 임금의 마음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