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8. 24.

    by. 위드_길

    목차

       

      일제 강점기 속 대한민국의 교육은 1910년 8월 29일에 발효된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사이에 이루어진 강제적인 한일합방조약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이 독립을 하는 1945년 8월 15일까지 일제의 강점기 속에 이루어진 교육을 말합니다. 주권을 잃어버렸던 대한민국의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일본의 교육정책 속에서 어떻게 대한민국의 뿌리를 지킬 수 있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일제 강점기 속 교육

       

       

       

      일제 강점기 속 조선 교육령

      조선 교육령이란, 일본이 한국통감부를 조선총독부로 승격 개편한 후에, 1911년 8월 조선총독부를 통해 조선 교육령을 제정하고 식민지 정책을 펴기 시작했는데, 조선 교육령은 일본의 식민지 교육 법령을 말합니다. 일본은 서양의 식민지정책과는 달리 식민지였던 대한민국의 민족의식과 민족 문화를 없애고 일본과 대한민국을 하나의 나라로 만들려는 정책으로 '교육'을 도구로 삼았습니다. 조선 교육령은 총 3차로 진행되었고, 조선의 교육을 운영 관리하였으며, 일본 군국주의의 교육을 그 정신으로 담고 있고, 일본에 충성하는 사람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을 집중하여 보통 교육과 실업 교육, 전문 교육은 있었으나 고등교육은 아예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들을 위한 교육과 한국인들을 위한 교육은 시설은 물론 학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서도 완전히 달랐던 이유입니다.

      일본이 관·공립학교를 늘려 그 중심으로 실시하는 식민지 교육과는 반대로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민족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사립학교에 일본이 탄압하기 시작했고, 사립학교규칙을 발표해 사립학교들의 허가가 취소되는 등 민족의식과 민족 문화를 없애려는 탄압을 계속하였습니다. 일본 조선총독부는 조선을 향하여 집중적으로 교육탄압정책을 펼쳤는데, 1919년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일어나면서 뜨거워진 조선의 민족의식을 약화시키기 위해 유화정책을 폈는데, 그 일환으로 조선 교육령을 개정하였습니다. 개정된 조선 교육령은 고등보통학교의 교육연한을 늘리고 보통학교의 수업연한 역시 소학교와 동일하게 하고, 사범학교와 대학을 설립하여 근대적인 고등교육이 한반도에서 시행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뜨거워진 반일감정을 식히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고, 개정된 조선 교육령은 부정적이었던 관립학교에 대한 인식이 사립학교에 대한 인식보다 선호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조선총독부는 계속해서 인문계와 고등교육의 확대보다는 실업학교나 소학교를 늘리는 정책을 폈으며, 교육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과는 달리 고등교육은 받을 수 있는 확률을 낮추고 오로지 기초적인 교육을 통해 식민지를 지배하는 방식을 택하였습니다. 「조선민립대학기성회」를 결성하여서 대학을 설립하려고 했으나 나라의 어려움으로 실패했고, 이에 반응하여 일본은 조선에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했으나 조선인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매우 어렵게 하여, 결국은 조선인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일본은 중일전쟁을 통해 군국주의 체제를 강화하면서 1938년에 조선교육령을 다시 개정하였고, 조선인의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한 정책을 폈고, 어린 조선인들을 일본인으로 세뇌하고자 했습니다. 어린 조선인들을 일본인과 함께 공부하게 함으로 전쟁 시 조선인들을 합리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하고자 세운 꼼수였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면서 어린 조선의 학생들이 동원되었으며,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는 전문학생들과 대학생들을 학도병으로 강제 지원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기독교계열의 학교는 신사참배 문제로 폐교시키고, 사립학교를 강제로 관립학교로 바꾸기도 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속에서 조선의 교육 기회가 확대되었다고 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식민지정책을 위한 교육에 불과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속 초등교육

      일제강점기 속에서 이루어진 초등교육은 식민지의 식민지화와 일본 사회로의 동화에는 초등교육이 큰 역할을 하였으며, 일제시대의 초등교육에 대한 개관과 식민지에 대한 충성심과 복종심을 심어주기 위하여 식민지에 새로운 교육제도를 마련하였습니다. 식민지에서의 일본식 교육제도의 확립은 19세기 후반에 시작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식민지 시대의 초등교육의 주된 목적은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보급하고 일본제국에 대한 충성심과 복종심을 심어주는 것이었으며, 초등교육에서 사용되는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일본의 가치관과 신념을 반영하고 식민지의 지역문화에 대한 일본문화의 우월성을 강화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초등교육은 식민지에 특히 경제적, 사회기반시설, 문화적 동화적 측면에서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 정부는 지역주민에게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교육제도, 학교 건설, 교사 양성 등에 많은 투자를 하였으며, 이러한 투자는 식민지의 경제발전에 기여하였으며, 초등교육은 식민지의 문화적 동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일본어와 일본어의 문화의 도입과 지역문화의 위축을 촉진하였습니다. 초등교육의 긍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에서의 일본의 교육제도는 비판과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일부 비평가들은 일본의 교육제도가 주로 일본의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를 조장하기 위한 선전과 세뇌의 도구라고 주장했고, 다른 비평가들은 지역의 언어와 문화를 희생하여 일본어와 문화를 진흥시키는 것을 비판했으며, 이로 인해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이 훼손되었다고 주장했으며, 또한 일본의 교육제도의 악용과 학생들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식민지 시대에 식민지의 식민지화와 일본 사회로의 동화에는 초등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초등교육은 숙련돈 노동력의 발전과 식민지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한편, 지역문화에 대한 일본문화의 우월성을 강화하고 선전하고 교화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에 대한 비판을 받았으며, 식민지의 초등교육이 국가적 정체성과 정치적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자 하는 역사학자들과 학자들이 오늘날에도 지속적으로 논의와 검토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속 중등교육

      일제 강점기 속 중등교육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지속된 일제 강점기 동안, 한국의 중등 교육은 일본의 교육 제도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 학생들을 일본의 문화와 교육적 가치에 동화시킬 목적으로 한국에 새로운 교육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 중등교육은 확대되고 개선되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많은 새로운 학교를 짓고 중등교육에 등록하는 학생들의 수를 늘렸습니다. 한국 고전의 전통적인 교육과정에 과학, 사회, 체육과 같은 과목들이 추가되면서, 교육과정 또한 더욱 현대화되고 다양해졌습니다. 그러나 한국 학생들을 동화시키고 한국의 정체성과 문화를 억압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은 교육 제도에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한국어는 더 이상 학교에서 수업의 주된 언어가 아니었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는 교육 과정에서 누락되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부는 학생들에게 일본식 이름을 채택하고 일본의 문화 규범에 따라 행동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들은 교육을 계속 추구했고 이 기간 동안 한국 사회와 문화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속 고등교육

      일제 강점기 동안, 한국의 고등 교육 또한 중대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전역에 대학의 숫자를 늘렸고, 일본의 교육 체계를 본뜬 새로운 교육 과정과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들 중 하나는 학생들이 경쟁적인 입시에 기반을 두고 입학하는 새로운 입학 제도의 도입이었습니다. 이것은 학생들이 그들의 학교로부터의 추천이나 개인적인 인맥에 기반을 두고 입학했던 이전의 제도를 대체했습니다. 그 새로운 제도는 더 능력에 기반을 두고 투명하지만, 또한 학생들에게 더 경쟁적이고 스트레스를 주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일본 산업화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기술 교육에 중점을 둔 것입니다. 많은 새로운 기술학교와 대학이 기술자와 기술자를 위한 교육을 제공하고 광업, 운송 및 제조업과 같은 산업 부문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학생들은 일제 강점기 동안 고등 교육에서 많은 도전과 한계에 직면했습니다. 한국어와 문화에 대한 교육은 종종 소외되거나 교육 과정에서 누락되었고, 한국 학생들은 일본 교육자들과 행정하들로부터 차별과 편견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한국 학생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햇 한국 사회와 문화에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의 학생들은 다양한 어려움과 제한을 겪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일본의 교육 정책에 따라 한국어와 문화는 일본의 교육체제에서 완전히 배제되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한국어 교육이 일본어 교육에 밀려 배제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어 읽기와 쓰기, 문학, 문화, 역사에 대한 이해와 관련된 모든 학생들의 학습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일본어가 교육 언어로 채택되었기 때문에, 일본 문화 고유의 가치와 전통을 배울 기회가 더 많아졌으나, 일본 문화에 노출되면서 한국의 독립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잃어갈 우려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또한 일본식 교육을 받는 동안, 대부분 국내에 머무르는 가정이 없기 때문에 학교로 가기 위해서는 거주지를 변경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가정과의 접촉을 잃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들로 인해 일제 강점기는 한국의 교육 역사에서 매우 어두운 시기로 남았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날 때 학교의 모습

      일제강점기가 끝나갈 때, 한국의 학교 시스템은 다시 한국의 교육 체제로 복원되었습니다. 1945년 8월 광복 이후, 한국 정부는 일본의 교육제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육 혁신을 시도했습니다. 복원된 학교 시스템은 확장과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대학 학제 개편이 있었으며, 더 많은 대학이 설립되었습니다. 또한, 교육 기회가 보다 평등하게 제공되도록, 전국적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신설되었습니다. 한국어 교육이 복원되었고, 한국어를 활용한 교과과정이 도입되었습니다. 이제 학생들이 한국어, 한국 문화 및 역사에 대해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육 혁신은 한국의 독립성과 정체성을 강화하고, 국내 발전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교육체제의 발전에는 다양한 문제와 과제가 있어, 이후에도 전 국민은 교육 체제 발전을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한국 학생들의 교육 수준은 매우 낮았습니다. 일제강점기 동안의 일본식 교육은 한국 학생들에게 일본어 중심의 교육을 제공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어 구사 능력이 많이 저하되었으며, 또한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증가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동안 많은 학생들이 교육 기회를 놓치거나, 일본어 중심의 교육에서 발생한 어려움으로 평소의 학습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국내 교육 체제의 개혁과 노력으로 한국의 교육 수준은 점차 향상되었습니다. 신설된 초등학교와 중학교, 대학 학제 개편 등을 통해 교육기반은 마련되었으며, 근대적 교육 기술들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들 노력의 결과로 한국은 지금까지 원천적으로 좋은 교육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세계 각국에서 고급 인재를 배출하고 있습니다.